“살날 한 달도 안 남았어” ‘4남매 두고 못 가겠어’ 트롯 여왕 김혜연, 뇌종양 시한부 판정 받자 모두 오열했다
23.08.14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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트롯 가수 김혜연이 뇌종양으로 시한부 판정 받은 사실을 전하며 누리꾼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.


◆ 뇌종양에 시한부 판정 받아

13일 방송 된 ‘스타다큐 마이웨이’에서는 트로트 퀸 김혜은의 이야기가 공개되며 누리꾼들의 관심이 쏠렸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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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날 방송에서 김혜연은 가수가 된 계기에 대해 “우리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하고 싶고 열정이 불탔던 것 같다.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이 생활고에 시달리셔서 늘 뿔뿔이 흩어지냈다. 어렸을 때부터 안 해본 알바가 없다”고 말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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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어 가장 힘든 순간을 고백했다. 김혜연은 힘든 일이 엎친데 덮친다고 머리에 종양이 발견됐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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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사에게 ‘김혜연 씨는 오늘 쓰러질지 내일 쓰러질지 모른다’는 얘기를 들으니 머리가 하얘지더라.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애들이었다. 낳기만 했지 추억이 하나도 없더라. 중요한 걸 놓치고 살았다”라며 눈물을 흘렸다.

◆ 기약없는 죽음에 유서 품고 무대 올라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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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편 김혜연은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남편의 사업 실패로 생활고를 고백하기도 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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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혜연은 “첫째는 8개월 둘째는 9개월, 셋째는 막달까지 무대에 올랐고 넷째 때는 출산 11일 만에 복귀했다”고 말해 놀라움을 안기기도 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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또 김혜연은 “남편 사업이 크게 힘들어진 적이 있다”며 양가 부모님의 생활비까지 챙겼다고 전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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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런 가운데, 엎친 데 덮친 격으로 ‘뇌종양 판정’까지 받으며 홀로 시한부 길을 걸어야 했다.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의사의 말에, 유서 한 장을 품고 무대에 올랐다고 밝혔다.

◆ 김혜연이 누구??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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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혜연은 1992년 댄스 가수로 데뷔했지만 1년 뒤 그녀의 진가를 알아본 작곡가, 이호섭의 권유로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게 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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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94년 첫 히트곡 ‘서울 대전 대구 부산’을 통해 2년 만에 앨범이 100만 장이나 팔렸고 이름 석 자를 전국에 알렸다. 이후에도 ‘간큰 남자’, ‘참아주세요’ 등의 노래가 줄줄이 히트하며 인생의 전성기를 맞는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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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중에게 시대를 앞선 ‘원조 트로트 아이돌’로 기억되는 그녀는 사실 가요계에서는 ‘별종’으로 불리며 시련을 겪기도 했다. 트로트 가수로 전향했을 때 당시 트로트 무대에서는 보기 힘든 파격적인 의상과 퍼포먼스를 선보였기 때문이다.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지만 선배 가수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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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중에는 당대 트로트 최고 스타였던 문희옥도 있었다. 하지만 문희옥은 김혜연이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후배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다정한 모습에 점차 빠져들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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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희옥은 “혜연이는 노래하고 싶은데 무대에 서지 못하는 후배, 생활이 어려운 후배들을 무대에 설 수 있게 만들어줬다. 참 인간미 있고, 입도 무겁고 선배와 후배도 세세하게 다 챙기고… 마음이 선하지 않으면 그렇게 못한다”며 애정을 드러냈다. 선후배로 만나 친자매 같은 사이가 되기까지 두 사람의 깊은 인연을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고 밝혔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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